2:12 미들급 세계챔피언 타이틀매치 경기 (유제두 vs 일본 와지마 고이치) 하이라이트
5:15 일본 복싱 킬러 유제두의 이상한 타이틀 방어전 (유제두 vs 와지마 고이치) 하이라이트
9:10 장정구의 세계타이틀 4차 방어전 명승부 (13kg 체중 감량 후의 고전)
11:56 150년만의 일본 복싱 천재를 무너뜨리는 장정구 11차 방어전 경기 하이라이트
14:04 장정구의 첫 해외원정 타이틀 방어전 명승부 (일본 복싱 천재 오하시를 7번 다운시키는 명장면)
우리나라에 도입된 프로경기에서 가장 오래된 종목은 복싱입니다. 그리고 70년대 복싱은 우리나라의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일전 경기가 가장 많았던 경기는 복싱입니다.
1970년대부터 복싱경기에는 늘 한일전이 따라다녔습니다. 일본은 항상 한국의 헝그리 복서들을 만만하게 보곤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망신을 당한적이 많았죠..
1975년 미들급 도전자인 유제두는 일본의 복싱 영웅 세계계챔피언 와지마 고이치에 도전, 일본 적지에서 KO로 승리하며, 김기수, 홍수환에 이어 한국의 세번째 세계챔피언이 됩니다.
일본 적지에서 일본선수를 통렬하게 이겼기에 국내에서는 일약 국민스타가 되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금으로 300만원을 지급했는데, 그중 100만원은 방위성금으로, 100만원은 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냈고, 나마지 100만원은 매니저, 트레이너와 30만원씩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시장이 강남 영동에 500평을 증여할 계획이었는데, 영동보다는 여의도 땅을 요청해서 100평으로 변환 지급 받았다고 하네요.
그는 2차 방어도 일본에서 싸워야했는데, 그 상대는 유제두 선수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던 와지마 고이치.
유제두 매니저는 한국에서 방어전을 치르겠다고 통보했지만, 애초에 2차 방어전까지 일본에서 치뤄야 한다는 계약 조건으로 세계타이틀에 도전했었고, 이르 어기면 15만 달러 위약금을 물어야 했기에
유제도는 어쩔 수 없이, 불리함을 떠안고 다시 일본 원정을 떠나야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유제두 선수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무기력했는데, 추후 유제두가 약물파동에 당한 것이라는 소문과 의혹이 일어납니다.
당시는 박정희 정권.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던 시절이었죠. DJ와의 친분관계을 안 중앙정보부에서 음식에 약물을 타, 유제두가 실패하도록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정상, 사건의 진상이 파악되기는 어려웠고, 유제두는 국내에서 단 한차례 타이틀전도 치뤄보지 못한채, 일본의 머니파워에 의해 타이틀을 빼앗기게 됩니다.
류제두의 총 전전은 55전 50승 2무 3패. 이중 외국 선수와의 경기가 38번이고, 그중 30번은 일본 선수들과 치른 경기들인데, 30번 대결 중, 28승 1무 1패를 압도록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80년대는 한국프로복싱의 전성기.
현재도 그렇치만, 일본에는 복싱과 격투기에서 천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80년대에 등장했던 일본 복싱 천재들은 한국의 헝그리 복서들에게 망신을 당하곤 했죠.
1980년대, 일본이 자랑하는 복싱 천재들과 한국프로복서들이 펼친 세계타이틀전 명승부를 살펴본다,
2015년 까지, 복싱 역사상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아시아 선수는 4명 뿐입니다. 그중에 2명이 한국인인데, 그것은 장정구(WBC 15차 방어전 기록)와 유명우( WBA 17차 방어전 기록)입니다.
장정구 선수는 한국인 최초로 20세기 100대 복서에도 이름을 올렸다고 합니다.
장정구는 20살 나이가 되던, 1983년 3월 일라리오 사파타를 꺾고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합니다.
이후, 장정구 선수의 세계타이틀 매치에는 유독 일본 선수가 많이 등장합니다. 1차 방어전부터 일본 선수였고, 이나미 마사하루 선수를 2 라운드에 KO로 승리합니다.
1984년 8월, 4차방어전의 상대는 일본의 도카시키 가쓰오 선수. 이 선수는 한국의 김환진 선수를 꺽고 세계타이틀을 획득한 후, 한국 복서 김성남 그리고 다시 김환진 선수에게 타이틀을 방어하며
한국 복서 킬러로 유명세를 탄 선수였습니다.
장정구 선수는 광복절 시즌에 일본 선수를 맞아 극일의 방어전을 치뤄야 했지만, 평소 음식 충동에 의한 체중조절 실패로, 계체량을 위해 무려 13kg 이나 감량을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탈진 증세까지 보이다 감량에 성공, 계체랭을 겨우 통과하였기에 체력적으로 큰 문제를 안고 경기에 입합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스피드와 빠른 발이 장점인 도카사키는 초반부터 장정구 선수에게 달려들었고, 체중 감량으로 인한 여파로 고전하던 장정구 선수는 끈진긴 정신력으로 도카사키를 KO로 승리합니다.
5차 방어전 상대도 일본 선수, 구라모치 타다시. 장정구는 일본에서 명복서로 불리우던 이 일본 선수도 가볍게 이깁니다.
당시 일본에는 라이트플라이급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장정구가 일본의 명선수들을 넘기고 세계 타이틀 방어전을 이어나가자,
일본 복싱협회는 장정구 선수의 타이틀을 빼앗기 위해서, 일본에서 수입한 멕시코 선수 헤르만 토레스를 동원해 장정구와 타이틀 매치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장정구는 이 일본 수입 멕시코 선수와의 3차례 방어전 대결(2차, 6차, 9차)을 벌여, 모두 승리로 가져갑니다.
이때 일본에서 150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다는 천재복서가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오하시 히데유키. 그는 프로데뷔 3번째 경기에서, 장정구의 5차방어전 상대이자 일본의 명복서라 불리우는 구라모치 타다시를
1라운드에 3번 다운시키며 KO승을 거둬, 일본 복싱계의 센세이셔날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곧, 일본 복싱의 천재라는 별명을 얻게되죠.
일본 복싱협회는 이 선수가 장정구의 타이틀을 빼앗을 수 있는 유력한 선수로 판단해 전폭적인 지원을 합니다. 그리고 프로복싱 7전 만에 장정구의 11차 타이틀 방어 상대로 결정됩니다.
당시까지 그의 전적은 6전 5승 1패. (1패는 한국의 김봉준에게 당한 판정패). 일본복싱협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그는 장정구에게 타이틀 도전을 하지만, 5라운드 KO를 당하죠.
오하시 히데유키의 컨디션 조절 실패가 패인이라고 생각한 일본 복싱협회는 자신들의 복싱 영웅 구시켄 요코가 달성한 13차 방어를 뛰어넘어, 14차 방어에 성공하자,
오하시 히데유키를 15차 방어전 상대로 다시 한번 성사시킵니다. 이번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일본 홈그라운드로 장정구를 데리고 왔죠.
그들의 복싱 천재가 텃세가 심한 일본 홈경기에서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최초로 해외 원정에서 방어전을 치른 장정구는 일본선수에게 만큼을 자신감을 보이며, 그를 8회까지 7번이나 다운시키고 TKO 승을 거둡니다. 일본 복싱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일본은 그들의 복싱 천재들을 모두 풀가동 해서, 장정구에게 5번 도전하지만, 모두 KO로 패하게 됩니다.
150년에 한번 나왔다는 일본의 복싱 천재는 유독, 한국인 복서들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때까지 이 천재가 얻은 3패는 모두 한국인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 선수는 장정구가 은퇴한 후, 훗날 신설된 미니멈급 세계챔피언이 됩니다.
장정구는 일본 선수들과 시합을 하면 그냥 부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일본 선수들은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체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근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본 선수들이 붙자고 하면 다 들이댔습니다. 그만큼 자신 있었고,
그냥 부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는 것이죠. (장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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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MacLeod의 Artifact - The Dark Conten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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