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산업 역군의 임무를 마친 ‘장성광업소’
막장 속에서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는 마지막 산업 전사들
잿빛조차 눈부시던 탄광촌의 흥망성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석탄.
하지만 쓸모를 잃어가고 있는 지금,
마지막까지 탄을 캐며 오래도록 자신들의 막장 속 드라마를 써 내려온 광부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물어가는 석탄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시대의 얼굴을 담아내고자 한다.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국내 최대 탄광 ‘장성광업소’
2024년 6월, 장성광업소가 88년 역사를 뒤로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36년 첫 삽을 뜬 강원 태백의 장성 광업소.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생산해 낸 국내 최대 규모의 탄광으로, 우리 석탄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석탄의 수요가 줄어들자 장성광업소도 폐광을 피할 수 없었다. 칠흑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함께 탄을 캐던 광부들은 눈앞에 닥친 이별을 실감하기 어렵다.
■ 캄캄한 막장의 영광, 그 뒤에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다.
장성광업소가 폐광하자 국영 탄광은 단 한 곳만 남게 되었다. 강원 삼척의 도계광업소다.
이곳에는 여전히 검은 보석을 캐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캐낸 석탄은 산업 성장의 동력이자 서민의 연료가 되었다. 광부가 더 깊은 굴속으로 들어갈수록, 산업은 성장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 또한 올라갔다. 그렇게 국내 경제 중흥의 버팀목으로 산업 발전을 이끈 석탄 산업. 그 뒤에는 수많은 산업 전사가 있었다.
지금 저도 집에 가면 힘든 티를 안 내거든요
아버지는 2018년에 퇴직했는데 아버지도 내색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아버지도 이렇게 일을 하셨구나...
이민규 / 도계광업소 9년 차 광부 -
2016년에 입사한 광부 이민규 씨. 가장 깊고 어두운 세상의 끝에서 민규 씨는 가족을 떠올렸다. 아내,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 민규 씨의 아버지 또한 탄을 캐던 광부였다.
아들 민규 씨는 막장에 발을 내딛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까만 탄을 자꾸 만져서 얼굴이 까매지니까 자신이 초라했어요.
엄마가 아닌 여자로 생각하니 너무 초라해서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식들 등록금을 내는 순간 엄마로 바뀌는 거죠.
강한 엄마로 바뀌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박미선 / 도계광업소 선탄부-
선탄부의 박미선 씨는 갱에서 캐온 석탄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 탄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늘 얼굴과 손끝이 새까맣게 물들 수밖에 없다. 12년 전, 신입 박미선 씨는 탄 자국을 눈물로 지워냈다. 하지만 지금은 석탄 가루가 내려앉은 온몸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 찬란했던 시대와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 탄광촌
석탄 산업의 발전에 따라 탄광촌 또한 부흥을 이뤘다. 광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몰려와 10: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고, 광업소 사원아파트가 들어섰으며, 시장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났다. 탄광촌에서는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석탄 전성시대, 그 이면에는 그림자가 뒤따랐다. 각종 재해로 인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갱내에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한순간에 동료와 가족을 앗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탄을 캐서 국가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했으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라는 분도 계셔요.
그런데 나는 이바지고 뭐고 그런 거 몰라요.
그냥 내 아버지가 없어졌다는 거.
이귀향 / 순직 광부 유가족 -
2024년, 석탄 산업은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영원한 이별을 앞둔 석탄, 그리고 이와 함께 살아온 이들의 드라마.
과연 이 드라마는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될까.